봄이 오면 동아시아 전역은 꽃으로 물듭니다. 특히 일본과 한국은 오래전부터 봄꽃을 즐기는 전통을 이어왔는데, 이를 각각 ‘하나미(花見)’와 ‘꽃놀이’라 부릅니다. 두 나라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기후도 유사하지만, 꽃을 즐기는 방식과 문화적 의미에는 차이가 존재합니다. 일본의 벚꽃놀이는 오랜 역사와 함께 국가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고, 한국의 꽃놀이는 공동체적 축제와 가족 단위 나들이 문화로 발전해왔습니다.
일본의 벚꽃놀이는 나라 시대(8세기)부터 귀족 계층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초기에는 매화 감상이 중심이었으나, 헤이안 시대 이후 벚꽃이 주류로 자리 잡으며 ‘사쿠라’가 일본 문화의 핵심으로 부상했습니다. 에도 시대에는 서민층으로까지 확산되어 봄철 벚꽃놀이가 전국적인 풍속으로 정착했습니다. 벚꽃의 짧고 화려한 만개는 ‘무상(無常)’과 ‘순간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며, 이는 일본 미학의 핵심인 ‘모노노아와레(物の哀れ, 사물의 덧없음에 대한 감흥)’와 직결됩니다.
한국의 꽃놀이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발전했습니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왕실과 문인들이 봄꽃을 즐기며 시를 짓거나 풍류를 나누었고, 민간에서도 진달래, 철쭉, 매화, 벚꽃 등 다양한 꽃을 즐기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화려한 꽃을 감상하는 행사가 민속 축제로 발전하여, 사람들이 강가나 산기슭에 모여 음식을 나누고 춤과 노래를 즐기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대표적 꽃놀이인 진해 군항제, 여의도 벚꽃축제, 구례 산수유꽃 축제, 제주 유채꽃 축제 등은 이러한 전통이 현대적으로 계승된 형태라 할 수 있습니다.
두 문화의 차이는 상징성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일본에서 벚꽃은 무사의 삶과 죽음을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짧게 피고 지는 벚꽃은 무사도의 정신, 즉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담함’을 대변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한국에서 꽃놀이는 ‘풍요와 공동체의 나눔’을 강조했습니다. 추수감사제격인 가을의 한가위와 마찬가지로, 봄꽃을 즐기며 가족과 이웃이 함께 모여 자연의 아름다움을 공유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일본의 벚꽃놀이는 철학적·미학적 의미가 강하다면, 한국의 꽃놀이는 공동체적·축제적 성격이 더 뚜렷합니다.
오늘날 두 나라의 꽃놀이는 모두 관광 산업과 연결되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일본의 교토, 도쿄, 오사카의 벚꽃 시즌은 전 세계 관광객이 몰리는 명소가 되었고, 한국의 진해와 여의도 역시 매년 수백만 명의 인파가 모입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일본의 벚꽃놀이는 정제된 관조의 미학을, 한국의 꽃놀이는 활기찬 나눔과 참여의 문화를 담고 있습니다.
결국 일본과 한국의 꽃놀이 문화는 서로 다른 역사와 가치관 속에서 발전했지만, 공통적으로 자연과 함께 계절의 변화를 기념하는 인간의 본질적 기쁨을 보여줍니다. 꽃이 피는 짧은 순간을 붙잡고자 하는 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일하며, 오늘날 우리는 이 두 문화에서 순간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공동체와 함께하는 시간을 재발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