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대표하는 꽃 국화는 조선 시대 궁중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장식물로 사랑받았습니다. 국화는 단순히 계절을 알리는 꽃이 아니라, 장수와 절개, 그리고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상징으로 쓰였습니다. 궁중 행사나 의례에서 국화가 빠지지 않은 이유는 그 상징성뿐만 아니라, 실제 생활과 의학적 효용까지 함께 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선 왕실에서 국화는 가을 궁중 연회나 제례 장식으로 자주 활용되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같은 기록에는 국화가 궁궐 행사장에 장식되었다는 내용이 전하며, 왕과 대신들이 국화를 감상하며 시를 짓는 풍습도 확인됩니다. 국화는 추석과 중양절 같은 가을 명절과도 연결되었는데, 특히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는 궁중에서 국화주를 만들어 마시며 장수를 기원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는 중국 한·당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이 조선에 계승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국화는 또한 궁중 의복과 공예품의 문양에도 널리 쓰였습니다. 왕비나 후궁의 의복에는 국화 자수가 새겨져 있었고, 왕실 도자기나 목가구에도 국화 무늬가 장식되었습니다. 이는 국화가 지닌 ‘부귀와 장수’의 의미를 일상 속에서도 담아내려는 의도였습니다. 더불어 국화는 절개를 상징하는 군자의 꽃으로 여겨져, 임금의 덕을 기리고 왕실의 권위를 높이는 장식적 소재로도 기능했습니다.
실질적인 효용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국화는 예로부터 해열, 해독, 시력 보호에 쓰인 약재로 활용되었습니다. 궁중에서는 국화를 건조해 차로 달여 마셨는데, 이는 단순한 음용이 아니라 환절기 건강을 지키고 마음을 맑히는 의례적 행위로 여겨졌습니다. 국화차와 국화주는 곧 건강과 장수를 바라는 왕실의 소망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국화를 주로 제례나 가을 꽃 축제에서 접하지만, 조선 시대 궁중에서는 국화가 삶의 구석구석에 스며든 상징적 존재였습니다. 화려하지만 절개를 잃지 않는 국화는 왕실의 권위와 안녕을 드러내는 장식물이자, 시대를 초월한 삶의 지혜가 담긴 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