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는 어떻게 서양의 정치와 종교를 상징하게 되었을까?

장미는 아름다움과 사랑의 꽃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서양 역사 속에서는 단순한 장식 이상의 의미를 지녔습니다. 특히 정치와 종교의 영역에서 장미는 권력과 신앙을 상징하는 중요한 도구로 활용되었습니다. 왕조의 정통성을 강조하거나 신의 은총을 드러내는 표식으로 쓰이며, 장미는 서양 문명사의 굵직한 사건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왔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15세기 영국의 ‘장미 전쟁(Wars of the Roses)’입니다. 왕위 계승권을 두고 대립한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은 각각 붉은 장미와 흰 장미를 상징으로 내세웠습니다. 붉은 장미는 힘과 열정을, 흰 장미는 순수와 정통성을 의미했습니다. 이 두 장미가 맞부딪친 내전은 수십 년간 영국을 혼란에 빠뜨렸고, 결국 튜더 왕조가 붉은 장미와 흰 장미를 결합한 ‘튜더 장미’를 왕실 문장으로 채택하면서 전쟁을 마무리했습니다. 이때부터 장미는 영국 왕실과 국가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종교적 맥락에서 장미는 성모 마리아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중세 교회에서는 장미를 ‘성모의 꽃’으로 불렀고, ‘묵주기도(Rosary)’라는 용어 자체가 장미 화환을 바친다는 의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붉은 장미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흰 장미는 성모의 순결을 상징했으며, 성화와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장미는 신성함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중요한 장치였습니다. 특히 고딕 성당의 장미 창(Rose Window)은 화려한 빛을 통해 하늘의 질서와 신의 은총을 표현했습니다.

르네상스 이후에도 장미는 정치·종교적 의미를 계속 지녔습니다. 교황청과 유럽 군주들은 장미를 권위와 권력의 상징으로 사용했고, 문학 속에서도 장미는 신앙과 이상을 상징하는 장치로 활용되었습니다. 단테의 『신곡』에서는 천국의 성스러운 장면이 ‘장미 정원’으로 묘사되며, 장미는 신과 인간의 합일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오늘날 장미는 여전히 국가적·종교적 행사에서 중요한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장미가 국가를 대표하는 문장으로 사용되고, 가톨릭 교회에서는 성모 축일에 장미꽃을 봉헌하는 전통이 이어집니다. 결국 장미는 사랑의 꽃을 넘어, 정치와 종교라는 권력의 장에서도 강력한 상징으로 기능해온 꽃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