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호텔 델루나(2019)」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서 있는 비밀스러운 호텔을 배경으로, 수백 년을 머문 사장 장만월과 인간 지배인 구찬성이 얽히며 영혼들의 한을 풀어주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화려한 미장센과 도깨비불 같은 조명, 고풍과 현대가 겹쳐진 세트는 죽음과 삶의 사이 공간을 감각적으로 구현한다. 이때 ‘달꽃’은 현실의 특정 품종을 지칭하기보다 극 중 세계관이 부여한 상징적 꽃으로, 달빛이 닿을 때 피어나거나 스러지는 듯한 장면 연출을 통해 영혼들의 사연과 만월의 감정을 시각화한다. 즉, 달과 꽃을 결합한 표지는 호텔의 성격—밤에만 열리는, 경계 위의 장소—을 집약해 보여주는 장치다.
작품에서 꽃은 대체로 두 층위로 기능한다. 하나는 손님(망자)의 사연을 드러내는 표식, 다른 하나는 장만월의 정서 상태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영혼들이 마지막으로 머무는 방, 복도, 정원에는 특정 사연과 연결된 오브제가 놓이는데, 달꽃의 이미지는 그들의 미련이 달처럼 차고 이우는 과정을 은유한다. 꽃은 만개할수록 향기로움을 퍼뜨리지만 이내 지듯이, 헤어짐의 순간은 아름답지만 덧없다. 구찬성이 각 사연을 풀어줄수록 달꽃의 기운은 고요해지고, 만월의 오랜 원한 또한 서서히 잎을 떨군다. 그래서 달꽃의 ‘꽃말’을 굳이 붙인다면 ‘이별의 인도(引導)’와 ‘기억의 정화’에 가깝다. 극 중 여러 회차에서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인물 곁에 달빛과 꽃이 겹쳐질 때, 관객은 장례 의식의 상징들—등불, 꽃장식—을 자연스레 연상하게 되고, 이별을 의례로 통과시키는 감정의 고리를 체감한다.
연출은 달꽃의 질감과 빛을 활용해 경계성의 미학을 만든다. 낮에는 장식처럼 고요하지만 밤이면 달빛을 받아 윤이 나고, 때로는 바람결에 흔들려 그림자로만 존재한다. 이는 호텔의 규칙—밤에만 손님을 맞는 공간—과도 호응한다. 특히 장만월의 내면이 과거에 붙들릴수록 달꽃의 화면비중은 높아지고, 그녀가 누군가를 보내 주기로 결심할수록 꽃은 배경으로 물러난다. 시각 언어의 층위에서 보면, 달꽃은 멜로드라마적 클로즈업(근경)과 미스터리한 원경을 잇는 ‘전환 컷’으로 쓰이며 장면의 감정 온도를 조절한다. 한국 설화에서 달은 때로는 망각과 재생을 상징하는데, 연출은 이 전통적 상징을 빌려 꽃의 피고 짐을 ‘기억을 씻고 떠나보내는 과정’으로 번안한다.
오늘 우리의 감각으로 달꽃을 읽으면, 그것은 상실과 애도의 현대적 은유다. 사랑하는 이를 보내는 일은 언제나 늦은 밤에야 비로소 현실이 되곤 한다. 그 밤을 건너게 하는 것은 거창한 말이 아니라 작은 의례와 상징들—촛불, 사진, 그리고 꽃—이다. 「호텔 델루나」의 달꽃은 바로 그 자리에 선다. 떠남을 가로막는 미련을 달빛처럼 부드럽게 덜어내고, 남은 자의 마음을 꽃잎처럼 차분히 정돈한다. 그래서 달꽃은 아름다움으로 슬픔을 감추지 않고, 슬픔을 건너도록 돕는 ‘실용의 아름다움’에 가깝다. 작품이 남긴 메시지는 명료하다. 이별은 끝이 아니라 통과이며, 통과를 가능케 하는 것은 누군가와 함께한 기억을 예의를 갖춰 다루는 일이다. 달꽃은 그 예의를 형상화한 상징으로, 오늘의 우리에게도 유효한 위로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