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대표하는 꽃 하면 단연 국화를 떠올리게 됩니다. 국화는 늦가을까지 꽃을 피우며, 그 강인함과 단아한 자태로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국화가 단순히 계절의 꽃을 넘어 제례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된 데는 역사적·문화적 배경이 있습니다.
국화는 중국 고대에서부터 장수와 절개를 상징했습니다. 기원전부터 기록된 『이아(爾雅)』, 『후한서』 같은 고전에서는 국화를 고결한 인품에 비유했습니다. 특히 음력 9월 9일 ‘중양절(重陽節)’에 국화주를 마시면 액운을 물리치고 오래 살 수 있다는 풍습은 이후 동아시아 전역에 퍼졌습니다. 이 전통은 고려와 조선에도 전해져 가을의 중요한 의례와 결합되었고, 국화는 자연스럽게 제례상에 오르는 꽃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조선 시대의 풍속을 정리한 『동국세시기』에도 추석과 중양절 무렵 국화를 장식하거나 국화주를 마시는 풍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국화가 단순한 미적 장식물이 아니라, 조상에게 장수를 기원하고 후손의 안녕을 비는 의미를 담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국화는 가을에 가장 풍성하게 피는 꽃이기에, 풍요와 결실을 상징하는 계절적 의미도 더해졌습니다.
국화의 약리적 효용도 제례 문화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국화는 항산화 성분과 해열·해독 작용이 뛰어나 예로부터 한약재로 활용되었습니다. 제례상에 국화를 올리고 국화차나 국화주를 마련한 것은 단순한 관습이 아니라, 실제로 가족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실질적 의미를 지녔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국화는 여전히 제례의 대표적 꽃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특히 흰 국화는 순수와 추모의 상징으로 장례 문화에도 자리 잡아, 생명과 죽음을 동시에 아우르는 꽃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국화가 지닌 상징성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국화가 가을 제례의 상징이 된 이유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계절의 풍요로움, 장수에 대한 염원, 그리고 절개와 청렴이라는 덕목이 한데 어우러져 국화에 담겼습니다. 가을마다 제례상 위에 올려진 국화는, 단순한 꽃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온 삶의 철학과 신앙을 담은 문화적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