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대화가 본격화된 1920~1930년대는 인쇄 매체가 급격히 성장한 시기였다. 신문과 잡지, 포스터, 광고가 도시의 거리를 채우며 새로운 시각문화가 형성되었다. 이 시기 인쇄물에 등장한 꽃 이미지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사회 변화와 여성상, 그리고 근대적 미의식을 상징하는 중요한 도상으로 작용했다.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관제 홍보물과 민간 잡지 표지에는 꽃 문양이 자주 등장했다. 1920년대 여성 대상 교양지인 『신여성』, 『삼천리』, 『별건곤』 등의 표지에는 백합, 장미, 모란 같은 꽃이 새롭게 부각되었다. 조선시대 회화에서 국화와 매화가 절개와 청렴을 상징했다면, 근대 잡지 표지 속 꽃들은 ‘자유’와 ‘개성’을 표현하는 이미지로 바뀌었다. 백합은 순수함과 근대적 여성의 세련됨을, 장미는 사랑과 자아의 해방을 상징하는 시각적 장치로 자주 사용되었다. 이는 서구의 여성 이미지가 조선 사회에 유입되며, 기존의 유교적 미의식이 점차 해체되는 과정을 반영한 것이다.
특히 1930년대 잡지 표지에는 장미를 배경으로 한 여성 일러스트가 자주 등장했다. 붉은 장미는 단순한 미적 장식이 아니라, 신여성의 자의식과 도시적 세련미를 상징했다. 반면 백합은 잡지나 교과서 표지에서 청순한 여성상, 혹은 모성의 상징으로 활용되었다. 이런 변화는 당시 사회가 여성의 역할을 전통적 도덕관에서 벗어나 새롭게 정의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같은 꽃이라도 백합은 ‘전통적 순결’, 장미는 ‘근대적 자아’라는 상반된 의미로 사용되며, 근대적 감수성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광고 포스터에서도 꽃은 근대의 소비문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소재였다. 화장품, 의류, 비누 광고 등에서는 화사한 꽃다발을 든 여성이 등장해, 소비를 통해 아름다워지는 근대적 이상을 시각화했다. 특히 ‘미스코리아’, ‘현대미인’ 같은 문구와 함께 꽃은 ‘근대적 아름다움의 표준’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이는 산업화 초기, 도시 여성의 이미지를 ‘화려함과 세련됨’으로 정의한 근대 광고 미학의 특징이기도 하다.
한편 문학잡지나 예술 포스터에서는 국화나 매화처럼 전통적 꽃 이미지도 여전히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때의 국화와 매화는 조선적 정체성, 즉 ‘우리의 미’를 강조하기 위한 민족적 상징으로 재해석되었다.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잡지 표지나 교과서 삽화에 전통 꽃무늬가 삽입되며, 민족 예술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시각적 저항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결국 근대화 시기의 인쇄물 속 꽃 이미지는 전통에서 근대로 이동하는 사회의 감수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기록이었다. 조선의 덕목을 상징하던 꽃들은 도시의 광고와 잡지 속에서 자유, 개성, 소비, 자아의 표현으로 바뀌었다. 꽃은 여전히 여성과 사회의 이미지를 담았지만, 그 의미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피어났다. 이처럼 근대의 인쇄물 속 꽃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정신을 반영한 시각적 언어로 기능했다.